20세기 초 세계 리더십의 바통은 대서양으로부터 미국으로 넘어왔는데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유럽은 다시 동쪽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1945년 이후 미국의 품에서 자란 유럽 연합이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하고 있다. 미국은 내심 분열되고 무능한 유럽을 제1, 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한번 본인이 구제해야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그에 따라 유럽의 통합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유럽 통합에 대한 지지는 유럽이 과거의 보호자인 미국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오히려 미국에 위험하고도 불공정한 경쟁자, 특히 농업 분야에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Frankenstein’s Monster, 자기가 만들었으나 스스로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이 되도록 할 수도 있다.
유럽연합의 기원은 1951년 작은 출발로 시작했다. 로버트 슈만(프랑스 외무장관, 총리 2번) 및 쟝 모네(프랑스 외교관, 실무국장), 두 명의 유럽연합의 아버지에 의해 만들어졌다. 한편 1990년대 초와 2000년 중반까지만 해도 유럽 국가 일부에서는 통합을 지향하고 있었고 다른 일부에서는 분할을 기도하고 있었다. 현재 유럽연합은 27개국의 회원국, 총 4억 5천여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고, 그 궁극적 목표로서 정치적 통합을 지향하고 있다. 즉, 공동의 안보정책과 대외정책(CSFP: Common Security and Foreign Policy), 한 명의 대통령, 한 명의 국방장관, 한 명의 외무장관으로 한목소리를 내어 27개 국가가 하나의 국가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유럽의 통합은 수 세기에 걸친 국가의 집단화 시도 중 가장 성공적 사례로 인류사에 일찍이 없었던 엄청나고 독특한 업적이라 볼 수 있다.
문명 충돌론을 주장한 새뮤엘 헌팅턴 교수는 유럽연합의 전망에 대해 “다음 세기가 미국의 세기가 아니라면 그것은 유럽의 시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일본이 투자, 미국이 소비, 소련이 무기에 전문화되어 있다면 유럽은 이 세 분야 모두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 유럽이 진정한 정치적 통합을 이룰 수 있다면 IT, 자원, 경제, 기술, 군사력에 있어서 앞서가는 파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대처 영국 전 수상은 “만일 유럽에 초국가가 형성된다면 그 초국가의 이해관계와 행동양식은 상충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이 주도하는 안정된 국제질서 상황에서 새롭게 경쟁하는 세력권에 따라 더욱 위험해진 세계에 살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또한 조지프 나이 교수는 “유럽 통합이 여전히 막연한 것이라면 21세기 주도적 세력으로 유럽을 생각하는 것 역시 과장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1970-80년대 에즈라 보겔은 Pax-Nipponica (일본에 의한 세계지배), 프레드 버그스텐은 미국과 일본의 양극적 경제질서 (Bigonomy),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일본이 파워의 중심으로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나 일본이나 유럽의 어떤 다른 국가가 미국을 대신하여 새로운 헤게모니를 장악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 유럽에서는 여전히 미국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패권을 대체할 수 있는 국가가 유럽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럽이 하나의 국가, 즉 정치적 통합을 원하는 배경 및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2류, 3류 국가로 전락했다. 한때 유럽은 세계의 정치와 부의 중심이었다. 정신과 학문의 요람, 로마법, 그리스 문화, 기독교 문명 등 인간의 모든 영역에서 세계를 품에 안았다. 유럽연합은 어떻게 하면 예전의 번영과 영광을 되찾을 수 있는가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공통된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유럽연합은 전쟁의 기억을 뒤로 하고 오로지 평화만을 생각하는 유럽으로 바꾸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독일과 프랑스는 백 년 동안 세 차례나 생사를 건 전쟁을 겪었다. 또한 소련이라는 늑대로 인하여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이러한 소련의 위협으로 인하여 유럽의 통합이 가속화되었다.
셋째, 국제·경제적 외압과 도전이다. 가전 시장, 자동차 시장 할 것 없이 일본의 시장 석권과 도전 앞에 세계의 모든 시장이 동맥경화증을 겪게 되었다. 유럽 국가들은 일본의 도전으로부터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고뇌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유럽통합의 불을 지폈다.
넷째, 독일의 통일이 유럽통합의 불꽃을 강하게 태우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 8천만 인구와 유럽 GDP의 30%를 차지하면서 동유럽 시장을 향해 돌진하는 독일을 품에 안는 방법은 무엇인가. 다뉴브 강을 피로 2번 물들인 나라가 독일이지만 반대로 독일은 유럽에서 친구를 필요로 했다.
마지막으로 소련이 붕괴되고 미국에 의한 세계지배, Pax-Americana에 맞서기 위해서 유럽통합이 필요했다.
출처 : 대구신문(https://www.idaegu.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0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