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 격변기 통신교육 역사 주제
- 10년 파고든 희귀한 연구성과
문학평론가 박형준 부산외국어대(한국어교육학과) 교수가 최근 펴낸 학술서 ‘독학자의 마음’(글이출판)은 먼저 희귀한 연구 성과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 연구서가 시선을 당기는 이유 또 한 가지는 책의 기획의도에 담긴 저자의 ‘마음’이었다.
‘독학자의 마음’의 부제는 ‘희귀본 교과서를 통해 본 한국 통신학교 국어교육의 역사’이다. 일제강점기·해방 직후·한국전쟁 이후·산업화 초기에 이르는 한국 사회의 격변기에 이뤄진 ‘통신교육’의 역사를, 저자가 10년 넘게 노력해 찾아내 꼼꼼히 정리한 당시 통신학교 교재 등과 함께 제시한다. 통신교육이란, 우편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등과 같은 통신 수단을 매개로 한 비대면 원격교육 활동을 뜻한다. 가난 등의 이유로 상급학교 진학 기회를 잃은 이들을 위해 일제강점기 우편을 활용한 제도권 밖 교육부터 현대의 방송통신 활용 교육까지 양태는 다양하다.
책 몇 군데에서 ‘최초’ 또는 ‘드문’ 등의 표현을 만난다. 그만큼 ‘희귀한’ 연구란 뜻이다. 예컨대 이렇다. “…2013년 (저자가) ‘근대 통신학교의 성립과 국어교육’이라는 첫 논고를 발표하기 전까지 한국 근대 통신학교의 형성 과정에 관한 학술적 논의는 거의 이루어진 적이 없다는 점이다.”(31쪽) “전후(戰後) 통신학교 국어교육에 주목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현재까지 이에 관한 논의와 교재 발굴이 거의 이루어진 적이 없다는 것….”(107쪽) “…지역에서 발행된 통신학교 강의록은 아직 학계에 보고된 바 없다. 필자는 서울 외에… 지역(대구)에서 발행된 통신학교 ‘강의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153쪽)
그간 연구가 좀체 이뤄지지 않은 한국의 통신교육을 저자는 10년 넘게 파고들었다. 그 이유를 우선 학술 차원에서 살펴보자. “실제로 1960년에 발행된 중앙통신중·고등학교의 ‘중앙강의록 안내서’를 보면, 전국 국민학교 졸업자 수가 55만6000여 명인 것에 비해 중학교 수용 능력은 겨우 19만8000명밖에 되지 않으며, 결국 35만8000여 명의 아동들은 눈물로 학교에 가지 못했고, 또 중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교하지 못한 사람과 중퇴하는 사람까지 합하면 실로 놀라운 수치라고 적고 있다.”(26쪽 등) “또 문교통계요람 1963을 보더라도 1962년 국민학교 졸업자 51만918명 가운데 중학교 진학자가 49.5%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학교 졸업자의 고교 진학률도 64.4%에 불과.”(26쪽)
여기서 분명한 학술상의 이유가 나온다. 일제강점기부터 산업화 초기(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각각 다른 이유로 진학에 실패하고 정규 교육 대열에서 이탈한 수많은 사람과 그들이 의탁했던 통신학교의 실체와 역사를 규명할 필요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1921년 7월 해인사의 주지인 이희광이 설립해 1930년대 중반까지 명맥을 잇는, 조선인이 설립한 첫 통신학교인 ‘조선통신중학관’에 관한 자료부터 1960년대 산업화 초기 통신학교 교과서까지 이 책은 담았다. 당시 통신학교를 다닌 사람과 통신학교 자체에 관한 분석·연구는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데서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그 자체가 중요한 시대상이기 때문이다.
박형준 교수는 또 다른 측면을 강조했다. “독학자들은 혼자 공부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지요. 공부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이들이 공부를 통해 새로운 삶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고 분투한 ‘마음’이 거기 담겨 있습니다.” 이는 이 책의 기획의도이기도 하다. “통신교육은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는 우편으로 이뤄졌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터넷을 활용한 비대면 교육이 전면에 등장했다. 그 뿌리와 의미를 되새기는 일에서도 통신교육의 초기 역사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문학의 요소이다.
출처 : 교수신문(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230117.22015005023)